나는 피아노를 어떻게 연주하는 것일까? 너무 당연한 질문이라서 그동안 신경 쓰지 않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악보 없이 연주할 수 있었던 곡을 다시 연주하려고 하면서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곡의 음을 기억하지도 악보로 기억하지도 못한다. 아니 안 한다.

나는 무조건 손가락의 움직임을 반복 실행해서 기억한다. 아직도 악보 읽기를 수월하게 하지 못한 탓이라서 그럴까 싶었는데, 내가 악보 읽기를 술술 할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역시나 나는 하얗고 검은 건반 위에서 누르고 좌우로 이동하는 양손 손가락의 진행을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손가락 움직임의 기억이 희미해지면 곡을 악보 없이는 연주할 수 없게 된다.

재미있게도 이런 현상은 333 큐브 맞추기를 할 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소위 공식을 외운다고 하는데, 이걸 외우는 것도 열심히 반복해서 손가락이 기억하게 한다. 설명서에 보면 약자로 표기해서 나열해 놓는데, 그걸 암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큐브를 쥔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큐브를 맞춰 본 지 오래되면 이 기억 역시 희미해져서 맞추기 설명서를 보지 않으면 맞추지 못한다.

그럼 결론은 뭔가? 나는 큐브를 맞추거나 악보 없이 피아노를 연주하려면 무조건 손을 여러 번 움직여서 암기되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미련한 건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한 가지 덧붙일 것은 그렇게 암기하면서 자기 스스로 일종의 공식 혹은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C장조 전주곡 시작 4마디까지는 오른손 움직임을 이렇게 외운다. 대개들은 계이름을 외우지만 나는 계이름이 아니라 건반의 위치를 기억한다. 어쨌거나 첫째 마디는 솔 도 미. 둘째 마디는 손가락 간격이 동일하면서 한 칸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셋째 마디는 앞서 손가락 위치에서 맨 왼쪽 손가락만 한 칸 왼쪽으로 이동한다. 넷째 마디 다시 첫째 마디를 쳤던 위치로 이동한다.

어쨌거나 당장에 급하게 확실히 익혀야 하는 것은 악보 읽기다. 보는 순간 피아노 건반 어디를 눌러야 할지 바로 아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2015.10.27

Posted by 러브굿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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